교황청 인준 성모 발현 - 1877년 폴란드 기에트슈바우트의 성모
1977년 폴란드 기에트슈바우트의 성모 발현은 다른 성모 발현지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당시 13세의 유스티나에게 성모님이 발현한 사건으로 교황청에서 정식으로 인준한 성모 발현입니다. 같은 폴란드라 그런지 발현 모습 등이 레이자스크의 성모님과 유사한 듯 느껴지네요.
다음 날인 6월 28일 유스티나는 친구였던 당시 12세인 바르바라 사무로프스카(Barbara Samulowska)와 람께 다시 그 자리를 찾았고 그곳에서 로사리오 기도를 암송하였는데 이 두 소녀 앞에 여인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여인은 매일 다른 시간대에 계속되었습니다.
1877년 6월 30일 여인은 폴란드어로 “너희들이 날마다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는 것을 나는 좋아한단다”라고 말하였는데 당시 폴란드는 독일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성모 마리아가 폴란드어로 말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7월 1일, 기에트슈바우트 교우의 어린이들이 첫 영성체를 받은 날 유스티나 역시 첫 영성체를 받은 후 단풍나무 아래에서 로사리오 기도를 바쳤습니다. 여인이 나타나자 유스티나는 “누구세요?”라고 물었고 여인은 “나는 원죄 없이 잉태한 가장 복된 마리아다”라고 대답합니다.
두 소녀는 7월 1일부터 몇 달간 폴란드의 자유, 투옥된 사제들과 실종자들 등에 대해 물었고 병자(病者)들의 치유와 그중에서도 특히 알코올 중독에 대해 물었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고 암송하기 바란다. 너희 모두의 기도 덕분으로 사제들은 석방될 것이고 병자들은 완쾌될 것이며 폴란드는 독립을 되찾을 것이다”라고 대답하였고 신자들에게 자신이 발현한 그 장소에 ‘원죄 없이 잉태한 자’의 동상과 함께 성당을 지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그리고 숲의 가장자리에 있는 샘물을 축복할 것이니 기적의 물을 마시라고 말해주기도 하였습니다.
1877년 9월 8일 성모님은 샘물을 축복하였고 “이제 병자(病者)들은 치유를 위해 이 물을 마실 수 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후 순례자들은 치유의 물을 마시기 시작하였고 1877년 9월 16일 마지막으로 성모 마리아가 나타납니다.
제목 : 기에트슈바우트에서 가톨릭 신자들에게 나타난 성모발현 : 공식문서를 바탕으로”(The Apparitions of Our Lady in Gietrzwald to the Catholic People According to the Official Documents)
목격자인 두 소녀는 이득이나 인정을 바라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주교의 대표단에서는 성모발현이 거짓이 아니라는 점 등을 보고하였습니다.
길바강(Gilwa River) 주변의 마을에서는 하루에 세 번씩 교구민 전체가 로사리오 기도를 암송하였고 수없이 많은 죄인들이 개종하였으며 자주 성체(聖體)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1877년에 일어난 폴란드 기에트슈바우트의 성모 발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877년 폴란드 기에트슈바우트의 성모 발현
1. 성모 발현
1877년 6월 27일 당시 13세인 유스티나 차프린스카(Justyna Szafrynska)가 첫 번째 영성체를 하기 위한 시험을 본 후 엄마와 함께 성당을 떠나려고 하는데 종탑의 종이 울리면서 ‘삼종기도’(Angelus)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유스티나는 이 소리를 듣고 기도하기 시작하였고 그러자 단풍나무 위로 아기를 안은 아름다운 부인이 밝은 광채와 함께 천사들에 둘러싸여 옥좌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다음 날인 6월 28일 유스티나는 친구였던 당시 12세인 바르바라 사무로프스카(Barbara Samulowska)와 람께 다시 그 자리를 찾았고 그곳에서 로사리오 기도를 암송하였는데 이 두 소녀 앞에 여인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여인은 매일 다른 시간대에 계속되었습니다.
1877년 6월 30일 여인은 폴란드어로 “너희들이 날마다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는 것을 나는 좋아한단다”라고 말하였는데 당시 폴란드는 독일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성모 마리아가 폴란드어로 말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7월 1일, 기에트슈바우트 교우의 어린이들이 첫 영성체를 받은 날 유스티나 역시 첫 영성체를 받은 후 단풍나무 아래에서 로사리오 기도를 바쳤습니다. 여인이 나타나자 유스티나는 “누구세요?”라고 물었고 여인은 “나는 원죄 없이 잉태한 가장 복된 마리아다”라고 대답합니다.
두 소녀는 7월 1일부터 몇 달간 폴란드의 자유, 투옥된 사제들과 실종자들 등에 대해 물었고 병자(病者)들의 치유와 그중에서도 특히 알코올 중독에 대해 물었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고 암송하기 바란다. 너희 모두의 기도 덕분으로 사제들은 석방될 것이고 병자들은 완쾌될 것이며 폴란드는 독립을 되찾을 것이다”라고 대답하였고 신자들에게 자신이 발현한 그 장소에 ‘원죄 없이 잉태한 자’의 동상과 함께 성당을 지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그리고 숲의 가장자리에 있는 샘물을 축복할 것이니 기적의 물을 마시라고 말해주기도 하였습니다.
1877년 9월 8일 성모님은 샘물을 축복하였고 “이제 병자(病者)들은 치유를 위해 이 물을 마실 수 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후 순례자들은 치유의 물을 마시기 시작하였고 1877년 9월 16일 마지막으로 성모 마리아가 나타납니다.
2. 발현 이후
당시 폴란드는 프러시아(독일), 오스트리아와 러시아로 나뉘어 있었는데 성모 발현지인 기에트슈바우트를 기점으로 재통일되어 통일국가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3. 인가
주교인 필리프 클레멘츠는 1978년 성모발현의 정당성을 규명한 위원회의 조사결과를 보고받았고 신부 프란치스체크 히플러(Father Franciszek Hipler)가 연구한 내용을 출판할 수 있도록 추진하였습니다.제목 : 기에트슈바우트에서 가톨릭 신자들에게 나타난 성모발현 : 공식문서를 바탕으로”(The Apparitions of Our Lady in Gietrzwald to the Catholic People According to the Official Documents)
목격자인 두 소녀는 이득이나 인정을 바라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주교의 대표단에서는 성모발현이 거짓이 아니라는 점 등을 보고하였습니다.
4. 성지
현재 기에트슈바우트는 마을 전체가 순례지가 되어 있으며 해마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성모 마리아의 성화(聖畵)와 기적의 샘을 찾아 지를 방문하고 있습니다.- 기에트슈바우트의 성모 발현 예배당
- 발현 당시의 성모님의 모습을 그린 성화(聖畵)
5. 효과
기에트슈바우트의 성모 발현이 있은 후의 5년간의 변화를 정리한 보고서에는 기에트슈바우트 교구는 물론 이웃의 모든 교구도 매우 열정적으로 변했고 모든 가정에서 가족 모두가 로사리오 기도를 다 함께 암송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수도원을 방문하였고 정기적으로 교회 미사에 참석하였습니다. 해당 보고서에는 이러한 변화가 모든 곳으로 퍼져나가 폴란드 왕국과 러시아에 스며들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길바강(Gilwa River) 주변의 마을에서는 하루에 세 번씩 교구민 전체가 로사리오 기도를 암송하였고 수없이 많은 죄인들이 개종하였으며 자주 성체(聖體)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6. 위치
- 기에트슈바우트의 성모 발현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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